동양은 산수화의 세력이 강하고, 서양은 인물화의 역사가 길다. 그렇게 된 이유가 여럿 있겠지만 미술사학자들은 무엇보다
자연을 보는 동서양의 인식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어떻게 다른가.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동양은 자연을 받들어 모셨고, 서양은 자연을 데리고 썼다.' 받들어 모심은 곧 두려워하며 공경하는 것을 말한다. 동양에서
큰 산과 긴 강은 임금이 따로 제사를 올릴 만큼 신령한 상대였다. 사람들은 위대한 자연의 천변만화를 그림으로 옮기며 커다란
힘을 가진 자연에 의지했다. 자연에 대한 외경이 산수화의 득세를 부추긴 동력이다. 서양은 부리거나 써먹는 쪽을 택했다. 자연
은 수단이자 도구였고, 그 위에 군림하는 주체는 인간이었다. 주체인 인물을 그리는 그림에서 자연은 한갓 배경에 머무는 객체
일 수밖에 없다.
오랜 세월 동안 서양의 그림에서 인물은 크고 자연은 작다. 동양화는 그 반대다. 자연이 크고 인물이 작다.
인물이 작은 소재로 등장했다 해서 인물화의 역사성이 줄어드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선조들이 인물보다 산수를 선호했을 뿐이다.
역사로 굳이 따지면 우리 인물화도 만만찮은 온축이 있다. 선사시대에 일찌감치 인간의 모습이 묘사됐고,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오는 인물들은 움직임이 다채롭기까지 하다. 옛 화가는 인물을 어떤 소재로 다루었을까. 산수를 배경으로 하면 산수인물화,
이야기와 함께 등장하면 고사故事인물화다. 풍속과 더불어 나오면 풍속인물화, 신선이나 초월의 세계를 그리면 도석道釋인물
화 등으로 나눌 만큼, 그 스펙트럼은 널찍하다. 하여도 인물화의 백미는 단연 초상화일테다. 조선시대는 다 말하듯이 '초상화의
천국'이었다. 엄청난 숫자의 초상화가 그려졌다. 나라에 공을 세운 신하들은 초상을 하사받았고, 임금의 얼굴은 대대로 이어지
며 당대 최고의 화가들이 몇 차례나 그리고 또 그렸다.
초상화는 서양 것이 눈에 쏙 든다는 사람이 많다. 인물을 닮게 그리는 솜씨, 휘황찬란한 복색, 자르르한 유화의 기름기는 보는
이의 눈을 현혹한다. 우리 초상화는 어떤가. 색은 칠한 둥 만둥, 붓질은 듬성듬성, 게다가 작은 종이나 천에 그려 압도하는 위용
이 없다. 그렇다면 비교우위가 어디에 있는가.앞서 말한 '전신', 곧 '이형사신以形寫神'에 있다. '얼굴을 통해 정신을 그리는'
방식이다. 겉을 꾸미느라 속을 놓치는 초상화는 허깨비 인물상에 머문다.
아무래도 우리 눈에 흔하고 친숙한 것은 산수인물화다. 산수와 인물이 어우러진 그림 말이다.
윤제황, <귀어도> 1833년, 종이에 수묵, 45.4x67.4cm 삼성 미술관 리움 소장
<귀어도>를 그린 윤제홍은 대사간을 지낸 문인화가다. 문인 출신 화가답게 속은 깊고 겉은 야일野逸한 그림이다. ...
<귀어도>에서는 사이좋은 관계를 넘어 스스로 자연이 된 존재가 보인다. 여기서 정작 놀라운 것은 화폭에 감도는 저 습윤濕潤
한 기운이다. 물기가 느껴져 축축하고도 미끄러운 감촉 말이다. 어쩌면 저토록 흥건한 먹색이 우러났을까. 이런 그림은 그린 이
의 마음이 먼저 젖어 있어야 나온다. 대나무를 그려도 가슴속에 대나무 한 그루를 미리 심어두어야 굳센 매듭이 드러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 다음이 기술이다.
수묵에 무슨 색깔이 있느냐고 묻은 것은 우문이다.
수묵에는 당연히 색깔이 있다. 우리가 흔히 쓰는 '먹색' 또는 '먹빛'이란 말에서부터 색채의 잠재태가 들어 있다. 옛 사람들은
수묵에 육채六彩, 곧 여섯 가지 색이 있다고 주장했다. 먼저 흑백이다. 그리지 않을 때는 백색이요, 그릴 때는 흑색이다. 그 다
음이 농담濃淡이요, 윤갈潤渴이다. 진한 것과 옅은 것, 그리고 촉촉한 것과 마른 것이다. '빨주노초파남보'만 색깔인 줄 아는 사
람이 들으면 어리둥절할지 모르겠다. 흑백과 농담과 윤갈의 마티에르를 정서적 색채로 치환하고 우려낼 줄 아는 민족만이 수묵
의 묘미를 알아챈다. 재즈의 세계를 모르는 사람에게 재즈의 맛을 설명하기는 어렵다고 루이 암스트롱이 일찍이 얘기했지만,
수묵의 깊은 맛과 정 역시 마찬가지다.
수묵화는 원색이 지닌 직접성과 결이 전혀 다른 색감을 지향한다. 말을 바꾸자면 눈보다 마음에 호소하는 색이 곧 먹색이란 얘
기다.
수묵水墨은 회화에서 '채색'의 상대적 개념이다. 수묵화는 물과 먹으로만 붓질하는 순수묵을 일컫지만 때로는 투명하고 맑은
색을 어느 정도 허용하는 수묵담채水墨淡彩를 아우르기도 하는 용어다. 수묵화는 문자 그대로 물과 먹으로 이룬 변화무쌍한
세계다. 수묵이 어찌하여 동양회화의 대종을 이루게 됐는가. 학자들은 수묵화의 시조로 당나라의 시인 왕유를 꼽는다. 그럴 만
한 까닭이 있다. 그의 저서 중에 수묵의 미학을 언급한 대목이 있다. '그림이 나아가는 길 중에 수묵이으뜸이다. 그것은 자연의
성정을 표현하여 조화의 세계를 이루며, 때로는 작은 크기의 그림으로 백 리 천 리의 경치를 그려낸다. 또 동서남불이 눈앞에
전개되고 춘하추동이 붓끝에서 생겨난다. ' 왕유는 여기서 '수묵'이란 말을 처음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의 첫 마디가 '수묵최위
상水墨最爲上'이다. 즉, '수묵이 가장 으뜸'이란 선언이다. 그는 그림을 도道로, 자연을 성性으로 간주한다. 춘하추동이 붓끝에
서 생간다는 말은 사계절의 음양이 수묵에 의해 피어날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런 변설辨說이 모두 동양회화의 근거를 이루는
수묵 예찬론이라 하겠다.
수묵은 오랜 세월에 걸쳐 사물의 거죽보다 사물의 뜻을 그리는 방도로 각광 받았다. 사실寫實보다 사의寫意에 치중하는 수묵화
가 된 것이다. 소동파 같은 문인은 대놓고 "대상의 외형을 따라 그리는 것은 어린아이들이나 하는 짓"이라며 목청을 돋우었다.
겉보다 속이 중요하고 속은 문기文氣로 가득 차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른바 문인화가 태동하는 터전이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
券氣였는데, 여기서 문인의 재료는 채색이 아니라 수묵이었다. 수묵화나 문인화나 그것이 지향하는 미학은 공약公約을 이룬다.
즉 간簡, 담淡, 아雅, 일逸이다. 단순하고 간결해야 한다. 담백하되 심원해야 한다. 우아하고 단정해야 한다. 일탈하거나 초월해
야 한다. 이것이 물과 먹이 이루는 조화造和다.
한시각, <삿갓 쓴 사람> 17세기, 종이에 수묵, 93x43.9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수묵의 지향성 중에 단순과 담백의 경지란 어떤 것인가. 이를테면 17세기 조선 화가 한시각의 그림 <삿갓 쓴 사람>이 한 예다.
한시각은 이 그림처럼 먹과 붓을 몹시 아껴서 그리느 감필화減筆畵에 동뜬 기량을 자랑했다. 몇 번의 붓질로 대상의 본질을 잡
아내는 기술이 감필이다. 이 사람을 보라. 챙이 너덜너덜한 삿갓에다 파자마처럼 생긴 비옷이 간소하다못해 초라하다. 눈두덩
이 두두룩하고 콧등은 볼록하다. 겉옷이 주름진 채로 붓질을 따라 자유롭고, 뒤축을 들고 사뿐사뿐 걷는 맨발은 마치 자취를
남기지 않을 듯하다. 그리다 만 듯 쓱쓱 그은 붓질로 옆모습을 기막히게 드러냈다. 끊어질 듯 이어지고 진하거나 옅은 붓의 자
취가 또한 시의 묘경에 닿는다. 그야말로 덜 그려도 다 그린 그림이 아닌가. 소매가 길다고 춤 잘 추는 게 아니다. 장식과 기교
는 수묵의 세계에서 군더더기가 되기 쉽다. 단순하고 담백한 경지가 무릇 이러하다.
마지막으로 수묵이 가진 사의성은 서예에서 또 하나의 꼭짓점을 이룬다. 한자는 표의表意문자다. 표의가 곧 사의다. 한자는
'뜻글자'이고 서예는 '뜻그림'이라 해도 괜찮다. 붓이 글씨를 더듬어나갈 때 종이 위에 남는 흔적은 얼마나 오묘한가. 갈라진
붓으로 글씨를 쓰면 가느다란 틈이 남는다. 이것이 비백飛白이다. '날아가는 여백'이란 뜻이다. 글씨에 새겨진 틈새는 감각적
인 매력을 띤다. 서예가 지닌 조형은 또 수묵의 유희정신과 닮았다. 굵거나 가늘고, 뭉치거나 번지고 하는 따위의 변화에다
느리거나 빠르고, 강하고 약한 뉘앙스를 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것이 붓글씨다. 추사 김정희의 붓글씨를 보자
김정희, <유천희해> 19세기, 종이에 묵서, 24x207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그의 작품 <유천희해遊天戱海>다. 왕희지가 존경한 위나라의 서예가 종요種繇의 글씨를 보고 양나라 무제는 탄복했다. 그의
글씨에 평하기를 무제는 '춤추는 학이 하늘에서 떠돌고 무리지은 기러기가 바다를 희롱하네舞鶴遊天 群鴻戱海'라고 했다.
추사는 이 말을 줄여서 '유천희해'라고 썼다. 글씨는 들여다볼수록 생김새가 신기하다. 두 발로 박차고 오르는 하늘 '天'자,
배를 저어가는 듯한 바다 '海'자는 아예 수묵 그림이다. 이러니 꼴과 뜻이 한 몸 아니겠는가.
전통 수묵화는 한순간에 초월의 경지로 나아가는 一超直入 세계를 보여 주었다. 그것은 손가락의 재주가 아니라 정신의 깊이
에서 탄생했다. 현란한 기교가 무성한 세상에서 정신의 고매함이 밴 수묵화는 홀로 떨어져 외롭다기보다 자족한 처신을 맘껏
즐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정희 <죽로지실> 19세기, 종이에 먹, 30x133.7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서예는 어렵다. 침묵하는 먹과 대답 없는 여백이 만든 구도는 독특하다. 하여 요령부득의 관념적 유희로 여겨지기도 한다. 서체
를 조형으로 보면 달라진다. 붓이 글씨를 더듬어나간 자취는 오묘하다. 진하고 옅은 먹, 굵고 가는 획, 빠르고 느린 붓놀림은 한
문에 어두운 현대인에게조차 감각적인 매력을 안긴다. 붓글씨는 무엇보다 디자인적 요소가 물씬하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 한 점을 보자 '죽로지실'이라고 썼다. 추사가 친구의 다실에 붙여준 이름인데. 곧 '대나무 화로가 놓인 방'이
다. 뜯어볼수록 생김새가 신기하고 기막히다. 척 봐도 차 달이는 김이 모락모락 난다. 대나무竹는 곧은 것과 비틀린 것이 섞였고,
화로爐는 다리굽이 네 개인데 불씨火가 겨우 살아 있다. 지之 자에서 향기로운 훈김이 피어 오르고, 실室에서 찻주전자가 놓여
있는 방이 금새 떠오른다.
추사의 천재성은 댓글을 달 여지가 없다. 예서에 바탕을 둔 그의 글씨는 그림도 못 따라간다. 눈 밝은 서양화가는 붓글씨의 조화
造化에서 감을 잡는다. 프랑스의 추상화가 장 드고텍스(Jean Degottex)는 서예를 그림의 교범으로 삼았다. 그이 주장이 놀랍다.
"단 하나의 획으로 끝내고 덧칠하지 마라. 여백의 효과를 살려라. 색을 멀리하라. 재료를 물질로 보지 마라. 극소에서 극대의 효
과를 끌어내라." 붓글씨의 세계가 오묘하기 그지없다. 추사의 붓질에서 묵향이 번진다. 따듯한 차 한 잔이 익어가는 사이, 번뇌
는 멈추고 망상은 오간데없다.
출처: 사람 보는 눈 / 손철주
펴낸곳 : (주)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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