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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퍼 센트를 위하여

모나리자의 얼굴에 나타난 행복감은 83퍼 센트혐오감은 9퍼 센트 두려움은 6퍼 센트분노는 2퍼 센트전문가들은 모나리자가 오묘하고 행복한 미소를 띠는 것은행복감 뿐만 아니라혐오감과 두려움과 분노가 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나는 2퍼 센트에 기운다혐오감을 간식으로 먹어 치우거나두려움을 강물에 흘려보내거나행복감을 관념으로 찬양하지 않으려는 것이다나는 바람 부는 날을 일기로 쓰는 것을 넘으려고현재진행형으로 투표하는 것을 넘으려고광장으로 간다많은 것을 배우고도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으려고나의 절감분을 찾으려는 것이다돌멩이 같은 분노를 집어던져울타리에 갇힌 나의 행복을 깨우려는 것이다 83퍼 센트를 위하여/맹문재출처:검은 시의 목록 /안도현 엮음

2025.03.26

엄마의 런닝구

엄마의 런닝구-배한권-작은 누나가 엄마보고엄마 런닝구 다 떨어졌다한 개 사라 한다.엄마는 옷 입으마 안 보인다고떨어졌는 걸 그대로 입는다.런닝구 구멍이 콩만 하게뚫어져 있는 줄 알았는데대비지만 하게 뚫어져 있다.아버지는 그걸 보고런닝구를 쭉 쭉 쨌다.엄마는와 이카노.너무 째마 걸레도 못 한다 한다.엄마는 새걸로 갈아입고째진 런닝구를 보시더니두 번 더 입을 수 있을 낀데 한다.출처:국어시간에 시 읽기 1

2025.02.28

경건한 슬픔 / 김일연

끊임없이 값어치를 무게로 재고 있는도살당한 고기들과 일용하는 양식들먹기를 삼백예순닷새 거른 날 하루 없네 생각하면 뜨거움만으로 사는 것은 아닌 것온몸으로 부는 바람 온몸으로 지는 꽃잎잎 다진 목숨들 안고 인내하는 겨울 산 헐벗은 무얼 다해 가고 있나, 너의 허울끊임없이 값어치를 맑기로 재고 있는새벽녘 생수 한 잔이 뼛속에 차갑다

2025.02.27

내가 살고 싶은 집

내가 살고 싶은 집 -박노해- 내가 살고 싶은 집은 작은 흙마당이 있는 집 감나무 한 그루 서 있고 작은 텃밭에는 푸성귀가 자라고 낮은 담장 아래서는 꽃들이 피어나고 은은한 빛이 베이는 창호문가 순한 나뭇결이 만져지는 책상이 있고 낡고 편안한 의자가 있는 집 문을 열고 나서면 낮은 어깨를 마주한 지붕들 사이로 구불구불 골목길이 나 있고 봉숭아 고추 깻잎 상추 수세미 나팔꽃 화분들이 촘촘히 놓인 돌계단 길이 있고 흰 빨래 널린 공터 마당에 볼이 발그란 아이들이 뛰놀고 와상 한켠에선 할머니들이 풋콩을 까고 나물을 다듬고 일 마치고 온 남녀들이 막걸리와 맥주잔을 권하는 그런 삽상한 인정과 알맞은 무관심이 있는 곳 아 내가 살고 싶은 집은 제발 헐리지 않고 높이 들어서지 않고 돈으로 팔리지 않고 헤아려지지 않는..

2024.11.07

혜화경찰서에서

블랙리스트 시인 99명의 불온한 시 따뜻한 시 혜화경찰서에서 -송경동- 영장 기각되고 재조사 받으러 가니 2008년 5월부터 2009년 3월까지 핸드폰 통화 내역을 모두 뽑아 왔다 난 단지 야간 일반도로교통법 위반으로 잡혀왔을 뿐인데 힐끔 보니 통화시간과 장소까지 친절하게 나와 있다 청계천 탐앤탐스 부근.... 다음엔 문자메세지 내용을 가져온다고 했다 함께 잡힌 촛불시민은 가택수사도 했고 통장 압수수색도 했단다 그리곤 의자를 뱅글뱅글 돌리며 웃는 낮으로 알아서 불어라 한다 무엇을, 나는 불까 풍선이나 불었으면 좋겠다 풀피리나 불었으면 좋겠다 하품이나 늘어지게 불었으면 좋겠다 트럼펫이나 아코디언도 좋겠지 일년치 통화기록 정도로 내 머리를 재단해보겠다고 몇 년 치 이메일 기록 정도로 나를 평가해보겠다고 너무..

2024.10.14

슬픔이 기쁨에게

슬픔이 기쁨에게 -정호승-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위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2024.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