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건축물이 아름답다고 할 수 있죠?"
"저 건물은 아름답게 잘 지어진 건가요?"
건축에 발을 담근 뒤 가장 많이 들어본 질문이고 또한 나를 가장 당황스럽게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사실 이것만큼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도 없어서, 갑자기 웬 여자가 불쑥 나타나 다짜고짜 "나 어때요?
나 예뻐요?" 라고 묻는 것만큼이나 당황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제는 이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제3선에 서 있는 건물이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라고. 도시의 모습을 결정짓는 것은 높고 화려
한 건물이 아닌 사람의 행위이다. 사람의 행위가 변하면 그 도시의 인상도 달라진다.
파리를 걷다보면 도시 곳곳에 카페가 많다는 것을 느낀다. 우리나라도 찻집이나 다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파리의 카페들은 긴 차양막과 테라스를 설치하여 그곳에 테이블과 의자를 내놓고 차를
마신다. 이쯤되면 어디까지가 거리이고 어디서 부터가 카페인지 모호해진다. 여기에 앉아 차를 마
시며 지나는 행인을 바라보는 파리지앵 역시 파리의 독특한 구성 요소가 된다.
거리를 향해 늘어서 있는 차양막과 테라스가 엣지 디자인이 될 것이며 이런 디자인이 있기 때문에
거리에서 차를 마시는 인간의 행위가 일어나며, 우리는 파리를 걷고 싶은 거리, 아름다운 도시로 기
억하는 셈이다. 반대로 스트리트 퍼니처가 전혀 없이 높은 건물만 잔뜩 들어찬 도시는 메마르고 삭
막하게 느껴진다. 30년 전 서울의 세종로 일대가 그랬던 것처럼. 다행스럽게도 최근 서울은 높은
건물 대신 스트리트 퍼니처가 많아지고 있다.
도시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어야 할 것, 즉 제1선에 서 있어야 할 것은 빈 공간과 그 속에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행위이고, 제2선에 있어야 할 것이 그 장소의 성격을 규명해주는 스트리트 퍼니처이며, 제
3선에 있어야 할 것이 스트리트 퍼니처와 섬세하게 맞물린 건물들이다. 건물은 되도록 눈에 띄지 않
는 뒷배경을 형성하면서 후면에 물러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외양이 화려한 건물, 사람의 행위가 일어나야 할 제 1선까지 나와 있는 건물은 "나 어때요? 정말 예쁘지
않나요?" 라는 표정을 한 채 예쁜 얼굴을 지키기 위해 찡그리는 연기, 우는 연기를 절대 하지 않으려는
배우와 똑같다. 자신의 모습을 버리고 완전한 연기에 몰입할 때 그녀는 예쁜 여자가 아닌 진정한 배우가
되듯, 건물 역시 인간의 행위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뒷배경으로 물러나 있
어야 한다. 바로 2, 3선에 있는 건물이 가장 아름답다. 1선, 2선, 3선에 있어야 할 요소들이 제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 그 거리는 아름다운 도시가 된다. 반대로 3선에 머물러야 할 건물이 제1선에 나올 때, 그
도시는 일류 도시가 아닌 삼류 도시가 되고 만다.
출처: 세상에서 가징 아름다운 집 / 서윤영
펴낸 곳:궁리 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