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멸선蔑鮮의식

빈페이지 2016. 5. 2. 13:36

 

원래 일본은 비록 8세기 중엽에 [일본서기]를 펴내면서 스스로 천황이 일본이 천하의 중심이라고 자처했지만 내심 자신들이 동쪽 변방의 끝에

위치해 있었다는 사실을 숙지하고 있었다. 이는 대륙과 한반도로부터 뛰어난 문화를 수입키 위해 혈안이 되었던 그들의 역사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일본인들은 내심 오랫동안 동아시아 문명의 변방에 위채해 있다는 열등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853년에 미국의 페리 제독에 의해 강제로 문호개방을 하면서 일변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오히려 메이지 유신을 기점으로 '멸아사상'

에 입각해 서구 열강의 흐름에 편승키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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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성전으로 미화한 [대동아전쟁]은 본질적으로 일제의 전략적 시야가 남태평양의 여러 지역으로 확대된 데 따른 것이었다. 당시 무한대로

확장하고 있는 일제의 전략적 시야를 학술적으로 뒷받침한 대표적인 학자로 교토대학의 야노 진이치를 들 수 있다. 그는 역사지리학적 분석을

통해 남방권을 포함한 '대동아' 개념을 만들어낸 장본인이었다. 그가 제창한 '대동아' 개념은 서양과 동양, 서구 식민주의와 아시아 민족주의,

종속과 자립이라는 개념틀 속에서 이념화되었다. '대동아공영권'은 바로 일제의 침략전선의 확대를 호도키 위한 간교한 언어유희에 지나지 않

았던 것이다.

 

당시 일제의 군부세력은 이런 논리를 동원해 '대동아전쟁'을 성전으로 선전하면서 조선인과 중국인을 비롯해 일제의 새로운 세력권에 들어온

남방의 아시아인들을 전쟁에 적극 동원코자 했다. 이는 미국을 상대로 한 [태평양전쟁]을 전개하면서 더욱 절실한 과제로 등장했다. 이들이

'성전'을 내세울 때 동원한 논리가 바로[근대초극론]이었다. 이는 장차 아시아인이 주체가 되는 아시아인의 공동번영체를 건설키 위해서는

서구 제국주의자들이 아시아 침략의 구실로 내세운 [근대론]을 초극해야만 한다는 논리였다.

많은 아시아 식민지 국가들의 지도자와 지식인들은 이 이론에 크게 혹했다. 현대 베트남의 국부로 숭앙받고 있는 '호치민'등도 이를 액면 그대

로 받아들여 적극 동조하고 나섰다.

그러나 사실 일제가 내세운 '근대초극론'은 동남아와 남아시아를 포함한 광대한 아시아지역에 일본을 중심으로한 새로운 아시아 체제를 구축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었다.

서구의 식민지로 전락한 아시아 각국의 입장에서 볼 때 착취자가 서구 제국주의자에서 일제로 바뀌는 것에 불과했다.

 

'근대초극론'은 일견 후쿠자와 유키치가 내세운 이른바 [탈아입구론]과 배치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근대초극론'은

사실 후쿠자와의 '탈아입구론'을 교묘히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문명이 정체된 아시아를 탈피해 문명화된 서구를 추종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후쿠자와의 '탈아론' 속에 이미 '근대초극론'의 씨가 배태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는 1882년 3월 11일자 [지지신포]사설에 게재된 다음과 같은

그의 주창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지금 아시아는 마음을 모으로 힘을 합쳐 서양인의 침탈을 막아야 한다. 이때 어느 나라가 그 선두를 맡아 맹주가 되어야 할 것인가? 마음을 비

우고 이 사태를 지켜보니 맹주가 될 수 있는 나라는 우리 일본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를 통해 후쿠자와가 내세운 '탈아입구론'의 궁극적인 목표가 바로 아시아 전역에서의 패권 확립이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는 메이지유신

이래 '태평양전쟁'이 일어날 때까지 조금도 변치 않고 시종일관 일제의 기본 책략이었다.

 

일제는 조선과 중국을 침략할 때는 '탈아입구론'의 '근대론'을 원용해 야만적인 조선과 중국은 문명화된 일본에 의해 개화해야만 한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이어 미국과 개전할 때에는 조선인과 중국인 등을 이용하기 위해 '근대초극론'을 개발해 낸 것이다. 간교하기 짝이 없는 논리전개가

아닐 수 없었다.

1945년에 터져 나온 일본의 무조건항복 선언과 1949년에 나타난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은 제국주의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협동체의 허구

가 일거에 와해되었음을 상징했다. 이는 동시에 중국을 야만시하며 오직 일본만이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선진 유럽과 유사한 역사과정을 밟을 수

있다는 자부심에 기초한 일본 근대화의 길이 좌절되었음을 의미했다. 일본은 곧 이웃 한국 및 중국에 대해 과거의 잘못을 솔직해 사죄하고 새로

운 선린 우호관계를 맺는 것이 도리였다.

그러나 일본의 우파지식인들은 오히려 일제의 지배가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과 중국의 발전이 없었을 것이라는 궤변을 동원해 과거의 침략을 정

당화하고 있다. 메이지유신 때의 '탈아입구론'에 의한 '근대론'과 태평양전쟁 당시의 '근대초극론'에 입각한 일본 중심의 아시아주의가 무너졌음

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우파지식인들은 황당한 [식민지 개발론]을 들먹이고 나서는 이유는 무엇일까?

 

-

최근 중국의 급부상과 관련해 아베 내각이 미국의 노골적인 지지하에 '군사대국화'의 길을 걷고 있으나 다시 동양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이른바

[재아화再亞化]를 외치는 목소리가 간단치 않다. G1이 바뀌는 천하대세의 흐름에 적극 편승하자는 주장이다. 이는 아시아의 맹주 자리를 중국에

넘겨 주는 것을 뜻한다. 21세기에 들어와 일본이 직면한 딜레마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재는 비록 '타도중국'을 외치고 있으나 조만가 '재아화'를

선언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릴 공산이 크다. 이미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 제1의 시장으로 급성장한 중국과 척을 지고는 일본의 앞날을 예측키

어렵기 때문이다. 천하대세가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중국과 한국 등의 급성장으로 인해 일본이 '멸아'에서 벗어난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일본의 우파 내에서는 아직도 조선에

대한 우월감에서 비롯된 [멸선蔑鮮의식]이 그대로 남아 있다. 이는 말할 것도 없이 조선이 일본을 능가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일본인의 멸선의식을 비판하기 이전에 그들보다 뛰어난 성과를 거두기 전에는 결코 일본인들의 멸선의식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직시

할 필요가 있다.

이는 중국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인해 중국을 대상으로한 이른바 '멸아의식'이 희박해지고 있는 반해 유독 조선을 비하하는 '멸선의식'이 여전하다

는 사실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일찍이 조선의 사대부들은 5백년 동안 내내 성리학에 매달려 순학荀學을 포함한 제자백가사상은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양명학조차 모두 사문

난적으로 몰아가는 한심한 모습만 보여주었다. 그 사이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순자]와 [한비자]등의 제자백가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전국책]

과 [국어]등의 사서를 섭렵하며 진정한 통치이념이 무엇인지 처절하게 고민했다.

 

-

우리가 현대의 일본 지식인들에게 국가대계와는 하등 상관없는 이념투쟁을 일삼으면서 이제 지금의 한국을 메이지시대의 조선과는 달리 보아야

한다고 아무리 강조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 독도 망언과 교과서 왜곡이 쉼없이 빚어지고 있는 근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가 모든 면에서 일본

을 압도하기 전에는 결코 그들의 '멸선'의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지정학적으로 수천 년 동안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바 있다. 장차 두 나라의 행보를 주의해 관찰하지 않을 경우

또다시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일본의 '멸선' 행태를 탓하기에 앞서 그들이 왜 '멸선'의식을 갖게 되었는지부터 겸허히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출처:고전으로 분석한 춘추전국의 제자백가 / 신동준 지음

펴낸곳:도서출판 인간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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