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오랫동안 본의 아니게 부유한, 그야말로 무척 부유한 사람들과 함께 지내면서 흥미 있는 현상을 관찰할 수 있었다.
취향이 고상한 부자들은 예로부터 간소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부유한 사람일수록 '평범한' 삶을 흉내 내는 것을 사치스러운
일로 여긴다. 현재 살고 있는 시골의 성이 클수록, 모든 편의 시설이 갖추어져 있지만 가능한 한 작은 도심의 공동주택을 더
동경한다. 그러면 부엌 어딘가에서 요리사가 조리한 음식을 근사하게 차려진 식탁에 앉아 먹는 게 아니라, 시장(슈퍼마켓이면
더욱 좋다)에서 비닐봉지 가득 장을 봐서 직접 요리하고 나중에 직접 두 손으로 설거지까지 하는 것이 호사스러운 일에 속한다.
부자들이 '소박한 삶'을 흉내 내는 것을 조롱하거나 '퇴폐적'이라고 비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도보 여행이나 야영,
소풍, 바비큐를 하면서 자연과 친밀한 척하는 평범한 도시민에 비교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야영을 하는 사람도 문명의 편안함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고, 푸른 하늘 아래서 바비큐를 즐기는 사람도 공장에서 만들어진 스테이크 소스를 단념하려 하지 않는다.
1등품 신발과 활동하기에 편안하고 따뜻한 액티브 재킷을 필요로 하며, 자연과 가까워진 후에는 언제든 다시 친숙한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가 즐기는 '소박한 삶'은 주로 상징적인 몸짓에 그친다.
고수익을 올리는 기업 경영진들과 육체적으로 고된 일을 할 필요가 없는 매스컴 백만장자들은 홍해 주변의 호사스러운 오아시
스나 모리셔츠의 여행에 이제 싫증이 났으며, 그동안 입맛에 맞는 것을 발견했다. 고원 목장의 목동으로 취직하는 것이다.
몇몇 스위스 여행사들이 고원 목장에서 일하며 휴가를 보내는 상품을 개발했는데, 현재 문의 전화가 쇄도하는 바람에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그러나 '농장에서 휴가를 보내는' 이런 극단적인 형태가 널리 알려지기 전에, 농촌 생활에 잠시 탐닉하는 것은
특권층에게 문명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특효약이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에 이 점을 멋지게 묘사하는 장면이 있다.
ㅡ
유럽인들이 최초로 아메리카 땅에 발을 내딛고서 그곳의 원주민들과 거래를 하려고 시도했을 때, 어려움이 무척 많았다.
인디언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유럽인들은 제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럽인들은 곰 가죽에 대한 욕망을
억누를 수 없었다. 인디언들의 사냥 전리품을 손에 넣으려면, 먼저 인디언들에게서 유리구슬이나 알코올 같은 것에 대한
욕망을 일깨워야 했다.
17세기 말에 영국의 식민주의자 존 배니스터는 인디언들이 "과거에 소유해보지 않아서 처음에는 전혀 아쉬움을 느끼지
않았던 물건들에 대한 욕망을 성공적으로 일깨웠다"라고 보고했다.
그 물건들은 거래를 통해서 차츰 인디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 되었다.
처음에는 전혀 가지고 싶지 않더라도 계속 권유를 받다 보면 욕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이러한 욕구가 얼마나 파렴치한 방식으로
조장 되었는지 의식하는 경우에만 거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유럽인들은 유리구슬이 귀중한 것이라고 집요하게 인디언들을 설득했고, 급기야 인디언들은 그 말을 정말고 곧이 듣게 되었다.
유럽인들은 알코올과 총기에도 서서히 인디언들의 흥미를 돋우었다. 그 결과는 익히 잘 알려져 있다.
오늘날에는 주로 매스컴을 통해서 욕구가 조장된다.
ㅡ
로빈슨 크루소가 섬에 표류했을 때, 한 가지 요령이 그의 목숨을 구해준다. 크루소는 침몰한 배에서 찾아낸 연필과 종이를 들고
두 개의 목록을 만든다. 목록 하나에는 현재 상황의 불리한 점을, 다른 목록에는 요행이라 여길 수 있는 점을 적는다.
불리한 점, 나는 무인도에 있으며 구조받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좋은 점, 나는 아직 살아 있으며 다른 동료들처럼 물에 빠져 죽지 않았다.
불리한 점, 몸을 가릴 만한 옷이 없다.
좋은 점, 옷이 있다 해도 거의 걸치기 어려운 더운 지방에 있다.
로빈슨 크루소는 이런 식으로 계속 적어나간다. 그런 다음 달리 어쩔 도리가 없는 부정적인 면들을 기억에서 지우고 긍정적인
면에 집중하기로 결심하면서, 놀랍게도 이런 결론을 이끌어낸다.
"그때부터 나는 내 쓸쓸한 처지에서 이 세상 다른 어떤 상태에서보다 더 행복함을 느낄 수 있다고 추론하기 시작했다"
물론 크루소의 태도를 자기기만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불리한 점'이라는 항목에 쓰인 일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자기기만이야 말로 크루소를 절망감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섬에 적응하여 결국 구조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로빈슨 크루소의 원칙'을 매혹적이게 하는 것은 진부하기 짝이 없는 '긍적적인 사고' 가 아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삶의 우여
곡절을 받아들이고, 희생자의 역할에 파묻히는 대신 끝까지 행위하는 사람으로 남아 있는 능력이다.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라고 설파하는 서적들의 잘못된 점은, 행복의 진부한 상투어를 독자들 눈앞에 들이밀면서 이루지 못할
기대를 일깨워 불행으로 인도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행복해지려면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인지하고 이루지 못할 꿈을 뒤쫓지
말아야 한다. 삶의 기복, 존재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사람은 영원한 건강, 갈등 없는 배우자 관계, 물질적인 소원의 성취를
뒤쫓는 사람보다 어쨌든 행복한 삶을 영위할 가능성이 더 많다.
ㅡ
베르너 좀바르트는 <사랑과 사치와 자본주의>에서 '꼭 필요한 것을 벗어나는 모든 비용은 사치이다' 라고 말했다. 사치라는
개념은 상대적인 개념이며,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 때만 구체적인 내용을 얻는다. 그러나 도대체 누가 '꼭 필요한 것'
을 규정하려 할 것인가?
유행의 창조자로 이름 높은 엘사 스키아파랠리는 말한다.
"사치는 부유함이나 화려한 치장이 아니라 천박하지 않음에 있다"
요즈음 돈 냄새를 풍기는 것은 전부 천박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런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듯 보이는 유일한 사람들은
이제 막 큰돈을 번 벼락부자들이다. 루이비통 신사용 손가방을 들고 유명 디자이너의 옷을 입고 두바이의 별 5개 짜리 호텔
'더 팰리스 원 앳 더 원 앤드 온리 미라주'에서 휴가를 보내는 올리버 칸 같은 사람이 스타일의 본보기라고 진지하게 주장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ㅡ 오늘날 천박하지 않은 진정한 사치는, 세금을 적게 납부하는 계층이나 아니면 이미 상당히 오랫동안 돈을 소유하여
그사이 취향 다루는 기교를 충분히 터득한 사람들, 부유한 티를 내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다.
삶을 보람 있게 해주는 것들은 수중의 돈이 감소한다고 해서 줄어들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우리의 내적인 자주성은 지금까지
결코 수입의 문제가 아니었다.
ㅡ 본문 중 ㅡ
이 책에서 가장 핵심적인 문장을 꼽으라면 "천박하지 않음에 있다" 를 꼽겠다.
결코 우아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 보다는
연일 매스컴을 오르내리는 갑질 재벌 회장님 일가들이 더 새겨 들어야 할 말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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