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스님이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을 보고 움직이는 것이 무엇이냐를 놓고 다퉜다.
이를 본 육조 혜능은 이렇게 일깨워주었다.
"흔들리는 것은 바람도 아니고 깃발도 아닌 그대들의 마음이다."
마음이 흔들리면 세상이 흔들린다.
도끼를 든 손도 흔들 리고, 절벽 위에 선 다리도 후들거린다. 스포츠나 게임등 승부의 세계가 특히 그렇다.
큰돈이 걸린 내기나 운명이 걸린 승부에서는 빨라지는 심장 박동과 함께 마음이 더욱 요동친다.
...
마음이 무겁다고 얘기할 때, 그 무게는 얼마나 될까.
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역도선수가 들어 올린 바벨 한쪽에 종이 한 장을 올려 놓으면 역기가 그쪽으로 확 기운다고 한다.
종이 한 장이야 아무것도 아니지만 거기에 마음이 얹어진 탓이다.
마음은 때로 역사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무거워지기도 한다.
큰 승부는 심장싸움이라고도 말한다.
마음이 흔들리면 승부의 저울추도 춤을 추기 때문이다. 승부의 의미가 클수록 마음은 더욱 움추러든다. 승리가 눈에 보일수록 손끝은 더욱 떨린다. 손에 다 쥔 승리를 놓치는 극적인 역전 드라마는 이때 만들어진다.
담력의 차이가 승부의 명암을 가른 예는 수없이 많다.
바둑 역사상 가장 큰 승부로 꼽히는 제1회 잉창치배 세계바둑선수권 결승 제5국도 그런 예 중의 하나라고 하겠다.
우리나라의 조훈현 9단과 중국의 네웨이핑 9단이 2대2로 팽팽히 맞선 가운데 최종 대국을 맞았다.
사상 최고의 상금을 걸고 세계 최고의 강자를 가리는, 세계타이틀매치에 쏠린 전 세게 바둑 팬들의 관심은 지대했다.
그런데 역사적 승부의 명암은 대국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결정나 있었다.
운명의 날인 1989년 9월 15일 아침, 시합 장소인 싱가포르 웨스턴 스탠퍼드 호텔로 입장하는 두 대국자의 얼굴은 초췌했다.
네웨이핑은 굳어 있었고, 조훈현은 부어 있었다.
승부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둘 다 잠을 설쳤던 것이다.
하지만 한쪽은 얼굴이 굳었고 또 한 쪽은 두 눈이 부은 차이는 있었다.
그 미묘한 차이는 몇 시간 뒤 승패의 명암으로 그대로 이어졌다.
당시를 묘사한 한 언론 기사는 이렇게 적고 있다.
철의 수문장 네이웨핑 그가 악수를 나누고 대국장에 들어섰다.
그런데 이상하다.
핏기가 싹 가신 그의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푸른 빛이 감돌았다. 볼록렌즈처럼 둥근 얼굴에 가득하던 득의의 미소도 자취를 감추었다.
그의 모습은 영화 속의 저승사자 그대로 였다.
잠시 후 조훈현 9단이 나타났다.
놀랍게도 조9단의 두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그 모습이 사람들을 짧은 침묵 속으로 몰아넣었다.
생각하건대 승부는 이미 전날 밤부터 시작했던 것이다.
...
담력 싸움인 또 하나의 승부에서 조훈현은 이겼고, 네이웨핑은 졌다.
...
세월이 흘러 이제는 역사가 된 그 승부를 사람들은 복기할 때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심장이 승부를 갈랐다."
글출처: 곁에 두고 읽는 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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