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설명할 필요는 없다

빈페이지 2026. 2. 7. 15:06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사실과 이유를 찾는 일을 잠시 내려놓는 법을 배웠다.
어째서 굳이 모든 걸 따지고 분석해야 하는가?
대체 왜 저녁 찬송가, 성경 구절과 기도문, 대성당의 아름다운 건축, 모짜르트나 다른 작곡가의 음악에 그저 스며들게 내버려두지 않는 걸까?
설명하려 들지 말고 그저 받아들이면 된다.

요즘 나는 사람들이 스스로 설명하거나 정당화할 수 없는 믿음을 굳이 버리게 만들려 하지 않는다.
이제는 그런 행동이 지독히 무례한 일이라는 것을 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을 권리가 있다.

나는 손주들이 나뭇가지 위에서 꼬마 요정들이 깡총깡총 뛰어놀고 있다고 말해도 꼬투리를 잡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마법에는 마법만의 자리가 있으니 말이다.

예술가, 시인, 어린아이는 세상을 다른 방식으로 바라본다.
나는 많은 기업가 역시 비슷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새롭게 고안된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치를 믿을 줄 안다.
비록 그것이 왜 성공할 것인지 정확히 설명하지는 못하더라도 말이다.
...
만일 조직 안에서 새로운 것을 상상하고 꿈꾸는 사람들을 본다면, 그들을 그냥 내버려두라.
너무 캐묻지 말고 그들이 내놓는 것을 즐기며 받아들여라.
...
이제 자신만의 또 다른 능력, 즉 상상력을 키우자, 그것을 마음속에만 간직하지 말고 영화든 책이든 제품이든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데 써라.
남들에게 설명할 필요도, 스스로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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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서남부 케랄라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일고여덟 살쯤 된 한 어린 소녀가 교실 맨 뒤에 앉아서 낙서를 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다가와서 물었다.
"뭐하는 거니?"
소녀가 대답했다.
"신을 그리고 있어요."
소녀의 대답에 선생님이 말했다.
"이상한 소리 마. 신이 어떻게 생겼는지 아무도 모른단다."
그러자 소녀는 공책을 덮으며 말했다.
"곧 알게 될 거예요. 제가 이 그림을 다 그리면요."

얼마나 자신감 넘치고 용감한 모습인가.
영국 시인 윌리엄 헨리가 쓴 시 <굴하지 않는>의 마지막 두 행이 떠오른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며,
나는 내 영혼의 선장이다.

아직 글자를 읽지도 못하는 그 어린 소녀는 이 시구의 의미를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만약 내가 그 선생님이었다면 학생들의 견문을 넓힌다는 명목으로
(그리고 학생들에게 잘 보이려고) 학생들을 로마 바티칸까지 데려가 시스티나 성당 천장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보여주려 했을 것이다.
미켈란젤로가 그린 신은 친절하지 않은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다.

아이들은 아마 감명을 받을 테지만, 자신들의 삶과 연결되지 않는 한, 진정한 배움은 얻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가끔 영국 시인 알렉산더 포프의 이름을 빌려 이런 말을 한다.

"교육이란 곱씹어 이해한 경험이다."

포프가 이런 말을 한 적은 없지만, 이 표현이 교육의 본질을 잘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경험 자체는 학생들 스스로 쌓아야 한다.
...다시 케랄라의 어린 소녀 이야기로 되돌아가보자.
소녀가 그린 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빠를 그렸을까? 아니면 머리에 왕관을 쓰고 구름 위에 앉아 있는 왕을 그렸을까?


글출처:아흔에 바라본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