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시인 브레히트는 나치 독일의 폭력을 목도한 후 이렇게 씁니다.
"나무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악행에 대한 침묵을 의미하여 거의 범죄자처럼 취급받는 이 시대는 도데체 어떤 시대란 말이냐" (후손들에게 중)
가공할 폭력이 일상적으로 자행되는 시대에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노래하고 서정시를 쓰는 것이 얼마나 호사스럽고 무책임하게 보일 수 있는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브레히트는 서정이 사라지는 시대를 개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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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법정 진술을 들으면서, 무엇보다 그의 언어 사용에 놀랍니다.
아이히만이 사용하는 말이 지극히 상투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이히만은 자신이 속한 조직의 상투적 표현에 기대지 않고서는 한 마디, 한 구절도 자신의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히만 자신도 법정에서 오직 '관청 용어만이 나의 언어'라고 스스럼없이 말합니다.
한나 아렌트는 이 언어의 상투성이 성찰의 부재로 이어진다고 지적합니다.
"그의 말을 오랫동안 듣고 있으면, 그의 말하기의 무능력은 그의 생각의 무능력과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생각의 무능력은 그가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뜻합니다."
...
아이히만은 주어진 생각을 주어진 방식으로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주어진 생각을 주어진 방식으로 반복하는 사람에게 성찰을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성찰은 주어진 대상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다른 언어로 해석하고 표현하려 노력하는 이에게나 가능한 일이니까요.
언어의 부재는 성찰의 부재로 이어지고, 성찰의 부재는 죄책감 없는 폭력을 낳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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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일화된 언어만 있는 황무지에서 폭력은 자라납니다.
언어의 관점에서 본다면, 폭력의 고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언어를 회복해야 합니다.
폭력이 있다고, 오직 폭력에 대한 담론만 허용되는 시대는 더욱 강팍해지고, 더욱 폭력적이 됩니다.
브레히트가 토로하듯, '나무에 대해 말하는 것은 악행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아닙니다.
암혹한 시대일수록, 오히려 더 자주 나무에 대해 말해야 합니다.
나무에 대해, 숲에 대해, 그리고 계절에 따라 피고 지는 꽃에 대해, 아이들의 환한 웃음에 대해, 사랑과 희망에 대해 우리는 더 자주자주 말해야 합니다.
다양한 대상에 대한 작은 이야기들이 많아져야, 거대 담론이 무너지고 독단의 언어가 힘을 잃습니다.
가장 빈번히 사용되는 언어가 가장 강력한 언어이지요.
권력의 언어가 강력한 것은 자주 말해지기 때문입니다.
전횡을 일삼는 권력을 견제하고 싶다면, 권력자들이 쓰는 언어가 아니라 권력과는 상관없는 언어로 세계를 자주 해석하고 표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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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것에 주어진 방식으로 반복하는 것에서, 우리는 과연 성찰의 언어를 찾을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 우리는 이 봄에도 봄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요.
봄에 피는 꽃에 대해, 사람 사이의 작은 떨림에 대해 말할 수 있을까요.
그런 것들에 대해 말하면 안이한 서정이 될까요.
...
우리에게는 이 세계를 채워 나갈 다양한 언어가 있고 다양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무도 우리에게 한 가지 이야기만을 강요할 순 없습니다.
다채로이 피고 지는 꽃들처럼, 다양한 이야기들이 함께 피어나길 바랍니다.
글출처: 윈래 그런 슬픔은 없다 / 허찬욱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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