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풍자하는 시
시는 풍교風敎와 관련되는 것으로 다만 물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것만이 아니다. 옛날에는 목탁을 쥔 자가
시를 채집해서 풍아風雅에 실었던바, 당나라 때까지 이러한 풍속이 남아 있었다. 두보의 시에,
采詩倦跋涉 채시관采詩官이 험한 길을 두루 다니니
채 시 권 발 섭
載筆尙可記 사관의 붓대에 올라 기록될 수 있으리.
재 필 상 가 기
高歌激宇宙 높은 노랫소리 우주를 울리니
고 가 격 우 주
凡百愼失墜 나의 여러 시편 그릇된 역사를 막을 수 있으리
범 백 신 실 추
라 한 것이 있는데, 그 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공은 '채시관이 험한 길을 두루 다니면서도 나의 시는 채집하지 않는데, 나의 시는 사관史官의 붓대와 같은지라
오히려 역사의 그릇됨을 방비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다면 당나라 때에도 또한 채시관이 있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오늘날 상국 민몽룡은 시인을 배척하여 말하길,
"시를 지으면 대개 시사를 풍자하는 일이 많아 남이 백안시하거나 혹 시안의 환란을 초래하게 되니, 배우지 않음이
마땅하다."
라고 하며, 재주가 없는 것도 아닌데 평생 한 구절의 시도 짓지 않았다. 상서 정종영 또한 그 자손들에게 시를 배우
지 말라고 경계하였다. 내 생각에 이 두 분의 말은 비록 일신을 잘 다스릴 계책은 되겠지만, 시경 300편이 남긴 뜻
은 전혀 지니지 못한 것이라 할 것이다.
근세에 간신 김안로가 동호東湖에 정자를 새로 짓고는 보락당保樂堂이라 편액을 걸었다. 기재企齋 신광한申光漢
에게 시를 부탁하여 기재가 사양하다가 결국 지었는데, 그 시는 다음과 같다.
聞說華堂結搆新 화려한 누각 새로 지었다는 소문 들었거니
문 설 화 당 결 구 신
綠窓丹檻熙潮濱 푸른 창 붉은 난간 강가에 빛나리.
결 창 단 함 희 조 빈
風光亦入陶甄手 아름다운 경물 또한 도견의 수중에 들어갔으니
풍 광 역 입 도 견 수
月笛還宜錦繡人 달밤의 피리 가락 도리어 비단옷 입은 이에게 어울리누나.
월 적 환 의 금 수 인
進退有憂公保樂 진퇴에는 근심이 따르는 법인데 공은 즐거움 간직하고
진 퇴 유 우 공 보 락
行藏無意我全眞 벼슬길에 나아갈 뜻 없으니 나는 천진함 보전하네.
행 장 무 의 아 전 진
烟波點檢須閑熟 안개 물결 살피자면 한가한 마음 있어야 하리니
연 파 점 검 수 한 숙
更與何人作上賓 다시 그 누가 있어 그대의 귀한 손님이 되려나.
갱 여 하 인 작 항 빈
이 시는 대부분 풍자하고 기롷하는 뜻이다. "소문을 들었다"함은 그가 직접 가서 본 것이 아님을 말한 것이고,
"아름다운 경물 또한 도견의 수중에 들어갔다."함은 조정의 모든 정사 및 강산 전토田土가 전부 도견의 손아귀에
들어갔음을 말한 것이다.
"달밤의 피리 가락 도리어 비단옷 입은 이에게 어울린다" 함은 번잡하고 화려함은 본디 풍월에어울리지 않고 부귀
인에게나 마땅함을 말한 것이다.
"진퇴에는 근심이 따르는 법인데 공은 즐거움 간직하고"라는 것은 옛 사람은 나아가거나 물러남에 모두 근심을 지
녔는데, 김안로는 홀로 즐거움을 누리고 백성과 더불어 함께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 "벼슬길에 나아갈 뜻
없으니 나는 천진함 보전하네"는 자신이 이러한 시대에 벼슬길에 나아갈 생각이 없어 스스로 그 지조를 온전히 지
니고 있음을 말한 것이다.
"다시 그 누가 있어 그대의 귀한 손님이 되려나"라는 구절은 자신은 보락당의 빈객이 됨을 원하지 않는데 그 어떤
사람이 권세에 아부하여 그의 빈객이 될 거냐는 것이다.
이 시는 구구절절 깊은 뜻을 지니고 있어 천 년 뒤에도 군자의 마음을 명백히 드러낼 만하다. 김안로 또한 문장에
깊은 식견이 있었으니 어찌 그 뜻을 몰랐겠는가? 그러면서도 끝내 신광한을 벌주지 못한 것은 당시 현자들에게
구실을 잡힐까 하여 그 속마음을 드러내지 못한 것이다.
출처:於于野譚 학예편 / 유몽인 지음
신익철, 이형대, 조융희, 노영미 옮김 /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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