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야담 於于野譚

이홍남의 시재

littlehut 2013. 8. 6. 11:46

 

이홍남의 시재

 

 

이홍남李洪男과 나세찬羅世纘이 서로 시를 주고 받으면서 "소"簫 자로 운을 삼고, 매 편마다 "이"李 자와

"나"羅 자를 쓰기로 했다. 맨 마지막에 이홍남이 "소"簫 자를 차운하여 쓰기를

 

羅李李羅羅李李        나리리라 나리리

 

兩人相作太平簫        두 사람 번갈아 태평소 부노라.

 

라고 하자, 나세찬이 마침내 붓을 던졌다. 나는 늘 이 구절을 기특하게 여겼는데, 그 후 중국에서 "태평광기"

太平廣記를 얻어 보니, "나리"羅李로 피리 소리를 말함은 당나라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이홍남은 어릴 적에 재주 있다고 알려졌다. 어떤 어른이 반달을 가리키며 운을 부르는데, 그 운을 "어"魚자로

하여 잇기가 매우 어려웠다. 이흥남은 운자가 떨어지자마자 말하였다.

 

半壁依稀出海魚

반 벽 의 희 출 해 어        반벽이 희미하니 바닷고기 나오도다.

 

또 "저"蛆 자로 운을 부르자 이번에도 즉시 대답했다.

 

薄將淸影熙浮蛆

박 장 청 영 희 부 저        엷고 맑은 그림자 부저를 비치네              * 부저:술 위에 뜬 거품 

 

그의 재주가 어릴 적부터 뛰어남이 이와 같았다.

우리나라의 문장 하는 선비들은 모두 태평광기를 공부하였고, 이홍남도 일찍이 이를 익혔던 것이다.

민 한림閔翰林이 지은 별곡別曲에 '태평광기 오백 권' 이라 했는데, 내가 항상 그 전질을 얻어 보고자 했다.

얻어서 보니 그 문장이 가까워 자못 간략했지만, 당나라 사람들의 문장으로 많이 비약卑弱하여 시에는 훨씬

못 미쳤다. 한퇴지韓退之(한유)가 문장의 쇠약함을 떨치고자 한 것은 까닭이 있었던 것이다.

 

 

출처:於于野譚  학예편 / 유몽인 지음

신익철, 이형대, 조융희, 노영미 옮김 / 돌베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