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인디언 기도문
바람 속에 당신의 목소리가 있고
당신의 숨결이 세상 만물에게 생명을 줍니다
나는 당신의 많은 자식들 가운데
작고 힘 없는 아이입니다
나로 하여금 아름다움 안에서 걷게 하시고
내 두 눈이 오래도록 석양을 바라볼 수 있게 하소서
당신이 만든 물건들을 내 손이 존중하게 하시고
당신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도록 내 귀를 예민하게 하소서
당신이 내 부족 사람들에게 가르쳐 준 것들을
나 또한 알게 하시고
당신이 모든 나뭇잎, 모든 돌 틈에 감춰 둔 교훈들을
나 또한 배우게 하소서
내 형제들보다 더 위대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큰 적인 내 자신과 싸울 수 있도록
내게 힘을 주소서
나로 하여금 깨끗한 손, 똑바른 눈으로
언제라도 당신에게 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소서
그래서 저 노을이 지듯이 내 목숨이 사라질 때
내 혼이 부끄럼없이
당신에게 갈 수 있게 하소서
-노란 종달새(수우족)
출처: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 류시화 엮음
1834년 보네빌 대위는 네즈 페르세 부족을 만난 적이 있다. 당시 그 부족은 교역이나 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백인들과
접촉하기 전이었다. 그는 자신이 만난 소박한 인디언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이 종족을 단순히 종교적이라고만 부르는 것은 그들의 모든 행동에 스며들어 있는 경건함과 헌신성을 제대로 전달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은 완벽하게 정직하다. 순수한 목적을 가지고 종교적 의례를 철저하게 지켜가는 태도는 한결
같아서 놀라울 정도다. 그들은 야만적 무리라기보다는 성스러운 종족이라고 부르는 게 더 적합할 것이다."
그들이 가진 관점의 넓이와 완벽한 관용성은 와바샤와 레드 자켓의 다음과 같은 말에 나타나 있다.
"어떤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한다 해도 그의 행위가 위대한 영에 대한 숭배라는 믿음에 의한 것이기만 하면 그는 실제로
위대한 영을 숭배하고 잇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행위는 그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존중될 것이다."
이 선지자들은 다음과 같은 말도 했다.
"종교적 관점 때문에 다투지 마라. 위대한 영에 대한 상대의 관점을 존중하고 그에게도 너의 관점을 존중해 달라고
요구하면 된다. 상대가 신성하게 여기는 것을 존중하라. 다른 사람에게 너의 종교적 관점을 강요하지 마라."
최초의 아메리카인들(인디언)은 자부심과 독특한 겸손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영적 교만은 그들의 본성과 가르침
에는 이질적인 것이었다. 그들은 말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말을 하지 못하는 생명들에 대한 우월함의 증거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어떤 면에선 위험한 선물이라고까지 생각하기도 했다. 그들은 침묵이야말로 완벽한 평정 상태라고
굳게 믿었다. 침묵은 몸과 마음과 정신의 완벽한 균형이었다. 자아를 지키면서 삶의 폭풍 속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고
흔들리지 않는 -비유하자면 나뭇잎 하나 흔들리지 않고 빛나는 연못 위에 잔물결 하나 일지 않는-, 지식에 오염되지
않은 현자의 상태야말고 이상적 마음가짐이며 삶의 방식이라고 여겼다.
"침묵이란 무엇입니까?"하고 그에게 묻는다면 그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것은 거대한 신비입니다. 성스러운 침묵은 그분의 목소리입니다!"
만일 당신이 "침묵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으면 그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자기 통제, 진정한 용기와 인내, 끈기, 기품 그리고 경외심입니다. 침묵은 한 인간의 성품을 형성하는 토대입니다."
선교사들이 본 인디언
오지브웨이 부족에게 선교하러 갔던 C.밴 두슨은 이렇게 말했다.
"완벽한 위엄을 가진 인디언의 품성은 존경스럽고 매력적이다. 다른 사람들의 악행에 오염되기 전 -특히 사악한 백
인들에게 영향을 받아 타락하기 전 - 진짜 북미 인디언들은 지구상에서 볼 수 있는 자연 상태의 가장 숭고한 종족이
었다. "
예수회 신부인 J.F. 라타타우의 증언은 훨씬 더 강력하다.
"그들은 숭고한 정신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어떤 시련에라도 맞설 용기와 용맹함, 고통을 견디는 영웅적인 인내심,
불행이나 역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평정심을 가지고 있었다. 부족민들끼리는 꾸밈없는 친절과 배려를 베풀었고 나이든
사람을 대단히 존중했다. 서로 간에 대한 배려는 그들이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는 자유나 자립과는 상충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지나친 열정에 빠지는 일이 없었고, 명예로움과 영혼의 위대함을 추구하면서 수련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1912년 여름, 노스다코다 주의 포트 예이트에 있는 스탠딩 록에서 예수교의 선교사였던 A.M.비데 신부를 만났다.
그는 25년 전 여성적인 젊은 신앙인으로 그곳에 왔었다. 그는 선교사로서 자신의 소명은 인디언들을 자신이 믿는 기독
교 교파로 개종시키는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진지하고 헌신적인 선교사들이 하는 것처럼 그 역시 자신이 선교하려
는 종족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의 사상을 공부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나기 이전부터 그는 인디언들 "미개한 이교도"라고 부르지 않고 있었다. 그는 인디언들이 고귀한 품성
을 가진 종족이며 높은 종교적 윤리적 기준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인정하고 있었다.
그는 수우족의 종교적 제단이야말로 "진정한 하느님의 교회이며 우리에게 그것을 짓밟을 권리는 없다."고 얘기했다.
1927년, 내가 10여명의 제자들과 함께 스탠딩 록을 찾아갔을 때 내가 찾던 비데 신부는 그곳에 없었다. 대신 나는 "변호
사 비데"를 만날 수 있었고 숭고하고 진실한 중재자로 살아가는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네, 저는 수우족이 참된 유일신을 섬기는 사람들이며 그들의 종교가 진리와 사랑의 종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선교사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법정에서 그들을 변호해줄 법률가가 필요하죠."
"때문에 저는 선교사라는 직업을 버리고 법률을 공부했습니다. 몇 년 후 저는 노스다코다 주의 변호사가 되었고 지금은
법정에서 다뤄지는 모든 인디언 관련 사건들의 공식적인 상임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 고매하고 핍박받는 종족을 위해 제 남은 시간과 힘을 바칠 수 있음에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군인들이 본 인디언
라피타우 전투가 끝난 지 한참이 지난 후에 모간 판사는 그의 저서 <이로쿼이 연명>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법률적 측면이든, 설득력이란 측면이든, 용기나 군사적 능력이든 이로쿼이족을 능가할 자는 없었다."
"그들 사회에서 범죄 행위는 매우 희귀한 일이라서 이로쿼이족에게 형법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
"어떤 경우든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고 이로쿼이족은 두려움이나 망설임 없이 진실만을 얘기했다."
존 G. 부커 대위는 그의 생애 대부분을 인디언과의 전장에서 보낸 사람이다. 그는 인디언을 증오하도록 훈련받고 인디
언 섬멸작전의 공포를 겪었지만, 결국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독수리처럼 자유로운 존재였다. 그들은 구속을 참지 못했으며 불의를 묵과하지 않았다. 그에게
부과된 제약은 전체의 이익과 부합되어야 했고 그 제약을 요구하는 조직은 친절하고 관대하며 정의로운 것이어야 했다.
적당한 타협은 용납되지 않았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거짓말쟁이를 경멸했다.
그들은 유한한 존재들 중 가장 관대한 존재였다."
1915년 12월 15일, 나는 워싱턴 D.C.에서 버팔로 빌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우리의 마지막 만남이었던 그 자리에서 그
가 한 마지막 말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우리는 인디언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단 한 번도 인디언 원정대의 앞잡이가 된 적은 없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과 우리 정부와 우리 국가에 대해 부끄
러움을 느낀다. 그들이 항상 옳았고 우리가 글렀기 때문이다. 그들은 협정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지만 우리는 한 번도
지킨 적이 없다."
1935년 2월 8일, 애리조나 주의 더글라스에서 나는 닐 에릭슨을 만났다. 그는 빅토리오와 제로니모를 상대한 크룩 장군
과 마일즈 장군의 두 원정대에 대원으로 참가했었다. 예전 일들을 얘기해 준 후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만일 내가 인디언에 대해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고 있었다면 나는 미국 군대를 떠나 아파치족에 합류했을 것이다."
N.A. 마일즈 장군 역시 인디언데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인디언들은 지금까지 존재했던 가장 영웅적 종족이다."
에드가 L. 휴이트 박사는 여러 차례에 걸쳐 공개적으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인디언들이 우리의 문명보다 우월한 문명을 만들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단지 그들은 철을 사용하는 데
능숙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런 생각은 그의 저서 곳곳에 상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 책의 31페이지에서 그는 이렇게
적어 놓았다.
"미학적 측면, 윤리적 측면, 그리고 사회 문화적 측면에서 인디언들은 그들의 정복자보다 앞서 있었다."
"인디언들이 유럽의 정부 형태와는 전혀 다르면서도 훨씬 효율적인 조직을 발전시켜 왔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할 일이다.
종족민의 복지가 그들 조직의 최고 목적이었다."
사우스웨스턴 대학에서 인디언의 삶에 대해 깊이 연구한 C.A. 니콜 교수는 초기 인디언 문명의 파괴에 대한 언급을 하
면서 내게 슬픈 어조로 말했다.
"전체적인 면에서 우리보다 더 나은 사람들을 배출해 왔던 문명을 우리가 파괴한 것은 아닌가 두렵습니다."(1911.11.1)
이들 군인들과 여행가들은 다수 의견에 반대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들은 아니었지만 인디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은 찬사
를 바친다.
인디언들은 삶과 종교의 자유를 누리는 가운데 용감하고 청결하며 친절하고 경건하면서 신실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온화하되 비굴하지 않았고 탐욕스럽지 않았으며 위엄이 있었고 용감하고 정직한, 한마디로 고결한 영혼의 소유자들이
었다. 그들의 육체는 지금까지 존재했던 인간들 중 가장 발달된 것이었다.
출처:인디언 영혼의 노래 / 어니스트톰슨 시튼, 줄리아 M. 시튼 / 옮긴이 정명서
펴낸곳:도서출판 책과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