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어떻게 뉴스가 될까
뉴스는 언제나 사실에 근거해야 하고 사실에 근접해야 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언제나 해석되어야만
이야기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해석은 상상과 생각의 영역 안에 있는 것이지요.
이처럼 뉴스에는 사실과 해석 사이의 깊은 틈이 존재합니다. 뉴스뿐만이 아닙니다. 이는 있었던 일을
다시 이야기하는 모든 재현의 숙명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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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유명한 '동굴의 비유'가 있습니다. 동굴에 갇힌 죄수들이 입구를 등지고 벽을 바라봅니다.
그들이 보는 세계는 벽에 비친 그림자뿐이지요. 그리하여 세상을 벽에 비친 그림자로 이해합니다.
플라톤에게 세계는 단지 이데아의 그림자입니다. 동굴 바깥의 진정한 세계를 인간은 알 수 없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재현된 세상일 것입니다.
사실과 뉴스의 관계도 이와 같지 않을까요? 뉴스는 사실의 다시 - 나타남, 재현입니다. 물론 기자는
사실을 최대한 충실히 담으려 하겠지만 앞서 예에서 보듯 사실을 완전히 , 똑같이 재현하고 전달
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언제나 해석을 해야 하기 때문이겠지요. 그리고 그 해석의 틀이 투명한
것도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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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끊임없이 뉴스를 하고, 보고, 듣는 것은, 다시 말해 사실에 끊임없이 상상을 덧붙이고 해석을
추가하는 것은 우리가 사실들의 고정된 질서를 바꾸려 하기 때문입니다. 뉴스를 해석하며, 뉴스로
사앙하며 사람들은 앞으로는 무엇이 새로이 일어날 것인가 예측하고, 우리 사회가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에 대한 변화를 고민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뉴스는 일어난 것에 관한 것이며, 동시에 앞으로
일어날 것에 관한 것이지요.
언론이라는 탁자 위에 기자가 놓여 있는데, 탁자의 다리가 짝짝이고 기울어져 있어서 기자들이
자주 언론 바깥으로 떨어져 나간다는 이야기 입니다. 제자리에서 제 역할을 해야 할 기자들이
위치를 지키지 못하고 휩쓸여 다니거나, 때로는 아예 땅에 떨어져 커다란 파열음을 내기도 합니다.
물론 좋은 기자들은 이런 구조에 휩쓸리지 않고 열심히 제자리를 지키고, 제 역할을 수행하려 노력
하겠지요. 하지만 이 문제를 그들이 애초부터 좋은 기자였느냐, 아니면 원래 나쁜 기자였느냐란 식
으로 바라보면 기울어진 탁자, 즉 구조를 놓칩니다. 물건을 탓하기 전에 먼저 할 일은 도대체 탁자의
어느 다리가 짝짝이냐를 아는 일입니다. 그런 이후에 탁자의 다리를 맞추는 일을 해야겠지요.
출처: 세상은 어떻게 뉴스가 될까 / 홍성일 지음 / 돌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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