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저와 여러분 사이에는 두 달의 시차가 있는 셈이군요.
이 시차가 문득 재미있게 느꺼집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저와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한 여러분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정서적인 간극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여러분이 이미 찢어 버린 12월의 달력을 저는 아직 망연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새해 달력을 넘긴 여러분에게 희망의 말이라도 건네고 싶지만, 지쳐 있는 저는 막상 그러지를 못합니다.
저는 어쩔 수 없이 12월의 사람으로 이 글을 씁니다.
한 해를 산다는 것은 새해 첫날 먹었던 마음들이 조금씩 무너져 가는 것을 아프게 지켜보는 일이며 부푼 희망속에 숨겨 두었던 일상의 비루함을 하루하루 꺼내 보는 일이라고 12월의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방도가 달리 없다는 걸 저는 요즘 자주 느낍니다.
내년의 삼백예순다섯 날도 하루하루 자신의 민낮을 보이며 저에게 일용할 비루함을 뱉어 놓겠지요.
그리고 내년의 12월이 되면 저는 또 여지없이 12월의 사람이 되어, 망각의 숲으로 퇴각한 한 해를 무연히 바라볼 것입니다.
김영민 교수는 새해를 여는 칼럼의 제목을 '새해에 행복해 지겠단 계획은 없다'로 지었습니다.
그의 칼럼에는 새해의 희망도 없고, 어찌해 보겠다는 계획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나아질 것이라는 그 흔한 덕담도 없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그럴싸한 기대를 가지고 한 해를 시작하지만, 곧 그 모든 것들이 얼마나 무력하게 무너지는지 깨닫게 된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는 그저 한 해를 소소한 근심을 누리며 살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이런 근심을 누린다는 것은, 이 근심을 압도할 큰 근심이 없다는 것이며, 따라서 나는 이 작은 근심들을 통해서 내가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고 말이지요.
김영민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이프로스 2018.
제가 견뎌야 할 것이 일상의 비루함 뿐이라면, 그것은 그것대로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하루를 사는 일이 바늘로 살을 찌르는 것처럼 고통스럽지 않고, 단지 비루할 뿐이었다면, 단지 비루할 뿐이어서 그 비루함만 견디게 되었다면, 그것은 제가 그렇게 불행하지 않았다는 말이 됩니다.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행복이라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새해에 어떠한 계획도 세우지 않고 한 해를 맞겠습니다.
매일 주어지는 비루함을 곱씹으며, 하루하루의 근심을 이어 나가겠습니다.
12월에 단지 허망해 할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견뎌 준 몸과 정신, 그리고 저를 견뎌 준 이웃들에게 미안하고 또 감사합니다.
저는 이 글을 12월에 씁니다.
여러분의 2월은 어떻습니까?
저에게는 멀리 있는 봄이 여러분에게는 그리 멀지 않겠군요.
여러분의 2월로 저도 건너가겠습니다.
글출처: 원래 그런 슬픔은 없다 /허찬욱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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