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자신의 정신과 마음의 움직임을, 존재 전체의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 보려면 자유로운 정신이 있어야 한다.
동의하거나 반대하는 정신이 아니라, 논쟁에서 편을 드는 정신이 아니라, 말 하나하나에 시비를 거는 정신이 아니라 진정으로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따라가는 정신이어야 한다.
이것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우리 대부분은 나무 사이를 흐르는 바람 소리에 귀 귀울이는 법을 모르듯이,
강의 아름다움을 고요히 바라보는 법을 모르듯이 자기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거나 거기에 귀 기울이는 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볼 때 그것은 언제나 새롭다.
모든 것을 확신하는 사람은 이미 죽은 사람이다.
그런데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특정 문화 속에서 '나'라는 좁은 틀로 빚어진 정신이 어떻게 자유롭게 보고 배울 수 있겠는가?
수 세기에 걸쳐 우리는 민족, 카스트(신분), 계급, 전통, 종교, 언어, 교육, 문학, 예술, 관습, 온갖 선전, 경제적 압력, 먹는 음식, 사는 환경, 가족, 친구, 경험,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영향에 의해 조건화(특정 방향으로 굳어짐) 되어 왔다.
그래서 어떤 문제에 대한 우리의 반응도 이미 그 조건화에 물들어 있다.
당신은 자신이 조건화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글출처:아는 것으로 부터의 자유/지두 크리슈나무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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