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야담 於于野譚

나옹 선사

littlehut 2013. 8. 1. 17:49

 

산 귀신을 죽인 나옹 선사

 

나옹懶翁은 고려 말의 신승神僧 회암사檜巖寺의 주지가 되어 부임해 가는데, 절에서 십 리를 못 미치는

곳에서 찢어진 납의를 입고 대삿갓을 쓴 어떤 사람이 길가에 엎드려 알현하였다. 나옹이 누구냐고 묻자,

그 사람이 대답했다.

"빈도貧道는 절에 있는 시주승입니다. 대사께서 저희 절에 오신다는 말을 듣고 감히 길에서 기다리고 있

었습니다."

나옹은 그에게 앞장서라고 했는데, 그는 물을 건너면서도 옷자락을 걷지 않고 평지를 걸어가듯 하는지라

나옹은 마음 속으로 그가 사람이 아님을 알았다. 절 문에 들어서자 그가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나옹이 절에 들어와서는 예불도 하지 않고 곧장 행랑으로 가 머무르니, 절의 중들이 괴이하게 여겼다.

조금 있다가 먼저 중들에게 한 다발의 삼으로 만든 동아줄 수십 길을 준비하게 하니, 여러 중들이 더욱 이

상하게 여기며 말했다.

 

"대사께서 처음 오셔서 예불도 드리지 않고 먼저 물건을 징발하고 인력을 동원하니 어찌된 일입니까?"

그러나 감히 거역하지는 못하고 갖추어 올렸다. 나옹은 대불전에 올라 건장한 중 백 명을 뽑아서 지시하기

를, 굵은 동아줄로 몇째 번 자리에 있는 장육불丈六佛을 얽어매어 땅에 쓰러뜨리라고 했다. 절에 있던 늙은

중들이 모두 모여 합장하면서 청하여 말했다.

"예전부터 이 불상은 영험하여 범상하지가 않습니다. 비를 빌면 비가 오고, 병이 나서 빌면 병이 나았고, 아

들을 빌면 아들을 잉태하여 무릇 기원하는 바에는 곧바로 응험이 있었습니다. 대사께서 처음 하시는 일에

대중들이 귀를 기울이고 눈을 닦고 보는데, 제일 먼저 불상을 쓰러뜨리게 하시니 매우 괴이한 일입니다."

나옹은 눈을 부릅뜨고 꾸짖어 말했다.

"너희들은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하거라!"

 

여러 중들이 감히 거역하지 못하고 일제히 힘을 합해 불상을 끌어당겼다. 불상은 나무로 만든 것에다 금을

입혀 무거운 것이 아니었는데도 100명이 끌어당겼지만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늙은 승려가 눈썹을 추켜올리

며 말했다.

"과연 사람들의 말과 같도다. 영험한 불상을 모욕해서는 안 되니 커다란 우환이 있을 것이다."

 

나옹이 탑榻으로 올라가 한 손으로 그 불상을 밀자, 즉시 땅바닥으로 쓰러졌다. 밖으로 끌어 내 승려들 앞에

놓고는 땔나무를 쌓고 불태우자 노린내가 산에 가득하였다. 그리고 나서 다시 불상을 만들어 세웠는데 또다

시 요환妖幻이 있자 전처럼 불태워 버렸다. 세 번째로 만들어 세웠더니 다시는 재앙이 없었다. 나옹은 이에

불상을 안치하며 말했다.

"무릇 불상을 안치하고 향불을 피워서 공양을 올리는데, 간혹 산 귀신이나 나무 도깨비가 불상에 붙어서 거

짓으로 석가여래의 신령한 환술인 것처럼 꾸미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른바 아무 절에 영험한 불상이 있어서

감통하여 즉시 감응이 있다고 하는 것들은 모두 이런 따위들이다. 어리석은 중들이 그것을 받들어 모시는데,

간혹 절 전체가 화를 입고 중들이 까닭 없이 죽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하니,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 나옹은 신통한 고승이다. 대개 사물이 오래되면 신령해지고, 신령해지면 반드시 이에 붙는 것이 있는 법

이다. 하물며 절집이 아침 저녁으로 공양하는 곳임에랴. 먹을 것을 구하는 귀신들이 이르 두고 어디로 가겠

는가? 요즘 사람들이 또한 무덤가에 간혹 돌로 사람을 만들어 그로써 신도神道를 지키게 하는데, 세월이 오

래되면 간혹 산 귀신이 생겨나 그 제사를 대신 받기도 한다. 근래에는 간혹 돌로 된 화표華票를 세워 돌로 만

든 사람을 대신하기도 하는데, 이는 자못 이치가 있다.

 

 

회암사檜巖寺: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경기 양주군 회천면 천보산에 있던 사찰. 1328년(충숙왕15) 원나라를

거쳐 고려에 들어온 인도의 승려 지공持空이 인도의 아라나타사阿羅難陀寺를 본떠 창건한 266칸의 대규모

사찰이었다. 1376년(우왕 2) 나옹이 중건하였으며, 조선 시대에 들어와 세조비 정희왕후의 명으로 정현조가

재중창하였는데, 명조 때 보우普雨가 실각한 후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19세기 초에는 거의 폐허가 되었다.

 

장육불丈六佛:높이가 1장 육척 되는 불상을 이르는 말

 

 

출처:於于野譚  종교편 / 유몽인 지음

신익철, 이형대, 조융희, 노영미 옮김 /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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