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로朴仁老

四友亭 사우정 / 박인로

littlehut 2013. 8. 29. 12:14

 

사우정에서

四友亭 / 박인로

 

매화

 

천백 가지 꽃 중에도 홀로 매화만이

옥같이 말끔하게 눈서리에 피었구나

그윽이 숨은 향기 내 심정을 아는 듯

바람 한 점 없건만 달빛은 저절로 술잔에 드네.

 

서호에서 사랑받던 한 떨기 매화꽃

천리 타관 옮겨 심어 눈 속에서 피었구나

적적한 내 생애에 살뜰한 벗이 되어

읊을 때나 마실 때나 항상 서로 마주 앉네.

 

 

내가 사는 이 고장에 없지 못할 대나무

스물인가 서른 그루 뜨락 가득 심었더니

곧은 절개 트인 마음 나를 항시 일깨워

눈 내리는 겨울에도 마주 보며 추위 잊네.

 

두고 보기 좋아서만 대를 심었으랴.

겸사겸사 낚싯대도 마련되니 더욱 좋고

맑은 그늘 끝나면 쉬엄쉬엄 걸어가자.

달빛 찬 가을 물에 낚시질이 또한 좋네.

 

 

못 둘레에 심어 둔 몇몇 그루 소나무

서릿발도 모르는 척 청청하게 우거졌네.

고운 노래 이따금씩 내 귀에 속삭여

이 사나이 언제나 굳은 절개 생가케 하네.

 

못가에 청정하게 높이 솟은 소나무야

겨울 해 저무는데 너만 유독 푸르구나.

사시장철 변하잖는 늠름한 그 절개

된서리 눈바람인들 두려울 게 있으랴.

 

국화

 

도연명 죽은 후에 누가 국활 아끼더냐.

그윽한 네 향기를 내사 정말 사랑노라.

독한 술에 꽃잎 띄워 취코 깨고 또 마시며

서산에 뉘엿뉘엿 해지는 줄 몰랐구나.

 

매화며 국화며 대랑 소나무

어째서 날로 더 사랑하는가.

사람의 마음이나 자연의 성품

소박한 그대로가 좋아서라네.

파파 늙은 이 나이에 새 벗 생겨 정드누나.

남들은 인간 오륜이라 하지만

내 홀로 육륜을 지키리.

 

육륜: 오륜에 자연에 대한 도리까지 말한 것

 

출처: [강호에 병이 깊어 죽림에 누웠더니 / 김하명 엮음]  도서출판 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