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정에서
四友亭 / 박인로
매화
천백 가지 꽃 중에도 홀로 매화만이
옥같이 말끔하게 눈서리에 피었구나
그윽이 숨은 향기 내 심정을 아는 듯
바람 한 점 없건만 달빛은 저절로 술잔에 드네.
서호에서 사랑받던 한 떨기 매화꽃
천리 타관 옮겨 심어 눈 속에서 피었구나
적적한 내 생애에 살뜰한 벗이 되어
읊을 때나 마실 때나 항상 서로 마주 앉네.
대
내가 사는 이 고장에 없지 못할 대나무
스물인가 서른 그루 뜨락 가득 심었더니
곧은 절개 트인 마음 나를 항시 일깨워
눈 내리는 겨울에도 마주 보며 추위 잊네.
두고 보기 좋아서만 대를 심었으랴.
겸사겸사 낚싯대도 마련되니 더욱 좋고
맑은 그늘 끝나면 쉬엄쉬엄 걸어가자.
달빛 찬 가을 물에 낚시질이 또한 좋네.
솔
못 둘레에 심어 둔 몇몇 그루 소나무
서릿발도 모르는 척 청청하게 우거졌네.
고운 노래 이따금씩 내 귀에 속삭여
이 사나이 언제나 굳은 절개 생가케 하네.
못가에 청정하게 높이 솟은 소나무야
겨울 해 저무는데 너만 유독 푸르구나.
사시장철 변하잖는 늠름한 그 절개
된서리 눈바람인들 두려울 게 있으랴.
국화
도연명 죽은 후에 누가 국활 아끼더냐.
그윽한 네 향기를 내사 정말 사랑노라.
독한 술에 꽃잎 띄워 취코 깨고 또 마시며
서산에 뉘엿뉘엿 해지는 줄 몰랐구나.
매화며 국화며 대랑 소나무
어째서 날로 더 사랑하는가.
사람의 마음이나 자연의 성품
소박한 그대로가 좋아서라네.
파파 늙은 이 나이에 새 벗 생겨 정드누나.
남들은 인간 오륜이라 하지만
내 홀로 육륜을 지키리.
육륜: 오륜에 자연에 대한 도리까지 말한 것
출처: [강호에 병이 깊어 죽림에 누웠더니 / 김하명 엮음] 도서출판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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