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순金祖淳은 예전에는 자하동紫霞洞에 살았다. 동洞은 경복궁 북쪽 창의문 아래에 있었다. 그곳은 북악산과
인왕산 사이로 계곡물과 숲이 우거져 있어 깊숙하고 조용한 곳으로 성 안의 다른 지역과 비교할 수 없는 좋은 곳
이었다. 자하동은 어떻게 부르면 자동紫洞으로 발음이 나오고 빨리 부르면 장동壯洞으로 나오기도 한다.
김조순은 국구國舅가 되어 조정의 권세를 잡고 장동에서 교동校洞으로 이사를 하였다. 나라의 명을 왕 대신 집행
하면서 삼대에 걸쳐서 국혼國婚을 맺으니 외척이 번성하였으며 이러한 일은 일찍이 없었다. 이로써 안동 김씨는
세칭 '장김(壯金, 장동 김씨)'이라 하였다.
장동 김씨의 선대는 선원仙源 청음淸陰 문곡文谷 몽와夢窩등 덕망이 높고 공훈이 많았던 분들이 많다. 김조순
또한 글에 능했고 일처리를 잘하는 두터운 덕이 있었지만 그 자손 대에 이르러서 탐완貪頑하고 교사驕奢하여 실
로 외척망국의 화(外戚亡國之禍)가 비롯되었다. 단 김병국金柄國만은 권세를 더 누렸지만,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오직 장김壯金이 있는 것을 알았어도 국가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장김은 나라의 주석
柱石이라 하니 어찌 그럴 수가 있겠는가?
자하동紫霞洞 : 현, 종로구 효자동과 창성동 일대 국구國舅 : 임금의 장인.
탐완貪頑 : 탐욕스럽고 완고함 교사驕奢 : 교만하고 사치스러움
대원군大院君이 나라 일을 맡아보던 갑자년(1864)에서 계유년(1873)에 이르는 10년간은 나라 안이 온통 두려움에
떨며 무서워하였다. 백성들은 잠시라도 혀끝을 서로 경계하며 감히 조정의 일을 말하지 못했다. 항상 그들은 저승
사자가 문 앞에 와서 두드리는 것만 같았다. 구제舊制에는 교령敎令 밑에 반드시 왕약왈王若曰로써 글의 첫머리를
삼았으나, 대원군이 집정한 10년간은 단지 대원위분부大院位分付라는 다섯 글자만으로 내외에 온통 행해졌다.
갑술년(1874)에 이르러 고종이 친정親政을 함으로써 비로소 구제가 회복되었다.
대원군이 집권한 후 어느 공식 석상에서 여러 재신宰臣들에게 소리 높여 말하기를, "나는 千里를 끌어다 지척咫尺
을 삼겠으며, 태산太山을 깍아내려 평지를 만들고 또한 남대문을 3층으로 높이려 하는 데 제공들은 어떻게 생각하
오?" 하였다. 대부분의 조신朝臣들은 어떻게 대답하여야 좋을지 알지 못하고 있었는데, 김병기金炳冀가 분연히 말
하기를, "천리가 또한 지척이면 지척인 것이요, 남대문을 또한 3층으로 높이면 3층이 되는 것이지. 대감께서 오늘
날 어떠한 일이고 못할 것이 있겠소? 그러나 태산은 스스로 태산인 것이지 어찌 평지로 바꾸겠소?" 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갔다. 대원군은 한참 동안 생각하다 말하기를, "그 놈 잘난 척하는군."하였다. 대개 천리지척千里咫
尺이란 말은 종친宗親을 높인다는 뜻이요. 남대문 3층이란 말은 남인南人을 천거하겠다는 뜻이고, 태산을 평지로
깎아내리겠다함은 노론老論을 억압하겠다는 뜻이었다.
대원군은 김병기의 굴강倔强함을 꺼려해서 그를 제거시키려고 하였으나 그의 종친들이 강성함을 두려워하여 오랫
동안 참아왔다. 그런데 때마침 김병기가 경기도 여주 땅으로 물러가서 살게 되자 이인응李寅應을 여주 목사로 부임
시켜 군욕窘辱에 빠뜨리고자 하였다. 그러나 끝내 해를 입히지 못했으니, 가히 장동 김씨의 세염勢焰이 얼마나 무서
웠나함을 알 수 있으며, 이러한 까닭으로 장동 김씨의 위세가 얼마나 사람들을 두렵게 하였나를 알 수 있다.
구제舊制 : 대원군이 정권을 잡기 이전의 제도. 교령敎令 : 임금의 명령
왕약왈王若曰 : 신하가 임금의 뜻을 대신하여 글로 지음
남인南人 : 조선시대 사색당파의 한 갈래, 東人에서 남인 북인으로 갈라졌음
노론老論 : 조선시대 사색당파의 한 갈래. 西人에서 노론, 소론少論으로 갈라졌음.
굴강倔强 : 고집이 세고 남에게 굽히지 아니함
군욕窘辱 : 괴로움과 모욕, 곤욕困辱과 같음
세염勢焰 : 세도의 불꽃, 기세
출처: 매천야록梅泉野錄 / 黃玹 著
李章熙 譯 , 明文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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