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왜 이 모양이 되어 버렸는지 묻는 손자에게, 커트 보니것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날 쳐다보지 마라. 그냥 이렇게 됬구나."
그는 손자에게 세상의 좋은 것만 보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는 세상이 엉망이 되어 버린 것에 미안해합니다. 세상이 엉망이 된 것이 그의 탓은 아닐 겁니다. 그는 오히려 망가진 세상을 조금씩 좋게 만들기 위해 분투해 온 쪽에 속하지만, 그래도 그는 손자와 독자에게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내 손자뻘 되는 분들에게 용서를 구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중 많은 사람이 내 손자들과 비슷한 나이일 것이다. ... 지금 지구는 엉망이다. 그러나 과거에도 항상 엉망이었다. '행복했던 시절' 따윈 한 번도 없었다."
커트 보니것은 변명하지 않습니다. '나 때는 그렇지 않았다'는 거짓말도 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는 안타까워삽니다. 이렇게 되어 버려서, 정말 미안하다고 말합니다.
악은 알지만 선한 것만 보는 사람보다, 악한 것에 눈감지 않고, 악한 것이 망쳐 놓은 세상을 미안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커트 보니거 같은 할아버지가 저는 더 좋습니다.
출처:원래 그런 슬픔은 없다/허찬욱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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